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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행

마음이 답답할 때는 무작정 걷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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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할 때는 무작정 걷고 싶어요!♬

 

마음이 답답할 때는 

무작정 걷고 싶어요!

 

2023.2.10(금)

 

 

얼마나 버려야 자유로울까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트나

얼마나 속아야 행복하다고 하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로울까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어지고

얼마나 썩어야 종자로 열릴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처음에는 누구의 글인지도 모르고 마음에 공감이 되어 부르고 불렀다.

수년을 그렇게 부르다보니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주송이 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참회 정진을 했다.

참회정진 기도를 하고 백팔 배를 했다.

감사와 다짐의 천 배 정진을 했다.

땀이 범벅이 되었지만 희열에 찬 모습은 경건하고 거룩했다.

.....

 

불교계 프리마돈나 

30년 음성 포교활동

노래하는 정율스님

"스님이 계를 받을 때

노래하거나 춤추지 말라는 금지조항이 있습니다.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데,

공연을 보는 많은 분들이

자주 눈물을 흘려 마음이 울적합니다.

어느날 관응 큰스님께 제 마음을 털어놓으니

너는 전생에 법화경을 많이 독송해서

좋은 목소리를 받았을 뿐 아니라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업장소멸의 눈물이니 

그 눈물에 마음 아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환희심을 내야 할 것이야.

그 이후로는 더 많은 내 마음의 감정을 담아

온 몸, 아니 온 마음으로 

노래를 하게 됐습니다."

 

음악은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희로애락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다.

노래 만큼 편하게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장르가 또 어디에 있을까.

노래 한 곡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실로 대단하다.

좋은 노래는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향기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조영근 선생(1940~)은 불교음악계의 큰 어른이다.

한마디로 찬불가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

일찍이 작곡가이며, 연주자로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한 조영근 선생은

뜻하는 바가 있어 불교음악에 귀의 했다.

 

노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보니 한 곡의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

재미난 사연들이 많다.

이 곡 역시 소중한 인연이 숨어 있다.

한 곡의 노래가 완성되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치는데,

무엇보다 작사자와 작곡가의 합(合)이 중요하다.

감정의 교류라고 할까?

공동작업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데.

이 곡의 경우는 매우 특이하게도 '골방 벽면'이 이런 과정을 대신했다.

 

그 인연은 이렇다.

3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1980년대 중후반 불교합창단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여러 사찰에서 창단 열기가 치솟을 때다.

찬불가 보급과 합창단 창단을 위해 애를 쓰던 조영근 선생이

강원도 동해시의 한 사찰을 방문했다.

그 사찰은 동해 삼화사다.

주지스님은 조선생을 초대했다.

그리고 합창단 지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두 분은 금세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은 시절이라

조 선생은 절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었다.

 

주지 스님 배려로 절에서 저녁공양을 하고

호젓한 요사(寮舍)에 들어가 하룻밤을 머무는데,

밤이 깊어갈수록 이 생각 저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를 않았다.

무심코 두리번거리다 벽면에 쓰인 문구 한 구절이 눈길을 붙잡았다.

벽면에 쓰여진 글은 바로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 였다.

운명 같은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나 울어야'로 시작하는 글귀는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았다.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또 누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마음 한 편에서 시작된 떨림의 파동에 계속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 다시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갔다.

조 선생은 결국 메모지를 꺼내 옯겨 적었고,

작자 미상의 이 글귀를 가슴에 품은 채 몇 달 며칠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글귀를 노랫말 삼아

간절한 신심을 덧씌운 명곡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랫말의 주인공은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조 선생은 일단 노래를 발표했고

이 노래는 불교합창단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어느새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런 사연은 이 노래가 널리 퍼지면서

노랫말의 주인공 대우 스님과의 조우로 이어졌다.

두 분의 진중한 인연은 거듭 발전해

많은 찬불가를 창작하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노래가 발표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저기 울려퍼지는 

불교합창단의 단골 레퍼토리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는

시대를 넘어서는 명곡이 아닐 수 없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느날 조 작곡가는 지범 스님의 앨범 제작을 위해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법화사에 머물 무렵에도 노랫말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천지연 폭포에 갔는데 폭포가 떨어지는 저 위의 모습은 어떨까 하고 그 위를 올라가서 보니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었다. 밑에서 사람들이 '와' 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데 그 자리에서 10분 만에 영감으로 작곡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라고 제주와의 인연을 말했다.(2014.10.24 제주불교신문) (감동으로 옮긴 글)

 

 

*관응(觀應) 큰 스님(1910~2004.2.28, 경북 상주군 외서면 봉강리 産 ): 초대 조계사 주지. 북한산 천축사에서 6년간이나 무문관 결사를 감행한 것은 한국불교 역사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무문관(無門關)이란 입구를 막아버리거나 못질을 해서 출입을 못하게 만든 독방에서 일체의 외부인을 만나지 않고 수행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3년 무문관 결사는 종종 볼 수 있지만 6년 세월동안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한다는 것은 관응 스님이 처음이었다.

 

*법화경(法華經): 묘법연화경(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이라고도 함. 대승경전의 하나로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했으며,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이다.

초기 대승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업장소멸(業障消滅): 전생이나 금생에 행동, 말, 마음으로 지은 악업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가 사라져 없어짐.죄업소멸. 

 

*정율스님: 원광대학 사범대학 음악대학 교육학과 성악 공부

 

*조영근 작곡가(1940~): 불교음악 작곡가, 부처님께 따지러 갔다가 찬불가 작곡자로 변신. "어머니가 백일 기도 끝에 저를 낳았지만 이상하게도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따지러 절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웅전에 들어서자 원망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정말 원 없이 울었어요.(1992)"

 

어리숙하게 살아라! (tistory.com)

 

어리숙하게 살아라!

※추기경님께서 왜 스스로 바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낮추셨는지 이제야 그 뜻을 조금은 알겠네. ※천상병 시인이 왜 항상 똑 같은 점퍼에 어리숙한 벙거지 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왜 평생을 천

kwon-blog2.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1MJ6haTid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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